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참회왕 에드워드 (문단 편집) == 정치는 이제 귀찮아 == 1050년대 중반 정도에 에드워드 왕은 고드윈의 세력을 견제할 정도의 세력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고드윈 가문도 세를 불려나갔다. 고드윈은 1053년에 죽었지만 해럴드를 비롯한 그의 아들들의 세력이 커졌고, 1057년이 되어서는 [[머시아]]를 뺀 잉글랜드 전역이 이들 손에 들어갔다. 이 무렵부터 에드워드는 정치를 점차 멀리하고 매일 사냥이나 다니게 된다. 1065년 해럴드의 동생인 토스티그가 백작으로 있었던 [[노섬브리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토스티그는 반란을 진압하고 싶었지만, 협상가로 파견된 그의 형 [[해럴드 2세|해럴드]]는 도리어 그를 비난했다. 심지어 반란군을 달래기 위해 그를 백작에서 내쫓고, 모카 백작을 대신 임명하기도 했다. 토스티그는 반란을 진압해 달라고 왕 앞에서 --징징댔으나-- 요청했으나 해럴드를 포함한 어느 누구도 그의 편을 들지 않았고, 토스티그를 쫓아냄으로서 반란을 무마하는 쪽으로 분위기는 돌아갔다. 토스티그는 왕가와 친했으나, 에드워드 왕은 분위기를 거스르지 못했고, 마지 못해 토스티그의 추방을 명령했다. 1066년 1월 5일, 에드워드 왕은 사망했고, 다음 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매장되었다. 문제는 누가 왕위를 이을 것인가였다. 에드워드 왕은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후계자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누구를 후계로 할지 명확히 지정하지도 않았다. 그가 살아 생전 누구를 후계자로 생각했었는지는 아직도 불명확하며, 당연히 당대에도 논란이 많았다.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 1세]][* 윌리엄 1세는 에드워드 왕의 모후인 노르망디의 엠마에게는 오빠인 리샤르 2세의 손자였다.]는 자신에게 넘기기로 이미 약속했다고 주장했고, [[해럴드 2세]]는 왕이 죽기 직전에 자신에게 왕국을 부탁한다는 유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정통성으로 본다면 가장 적임은 [[애설레드 2세]]의 증손자인 [[에드거 애설링]]이었다. 실제로 그는 나중에 벌어진 [[헤이스팅스 전투]] 직후 잠시 동안이나마 왕으로 지명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에드워드 왕의 관심 밖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세력 또한 없어서 왕위와는 멀어졌다. 어쨌거나 고드윈 가의 해럴드는 잉글랜드 왕위에 올랐다. 에드워드 왕이 죽은 다음 날, 즉 왕이 매장된 바로 그날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